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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린이 :
군즁속의 고독 |
조회수: 2719 추천:480 |
2015-09-06 13:5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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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다른 곳에 몰린 A씨는 목숨을 끊었다. |
그는...
그간 성과를 인정받아 입사와 동시에 상무로 발탁됐다.
상무 중엔 최연소였다.
평균보다 4∼5년은 빠른 경우였다.
IPTV라는 새로운 분야를 책임지게 된
A씨는 고군분투했다. 하루 평균 13∼15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주말에는 거래처 접대를 위해 골프 모임에 갔다.
골프 모임이 없으면 출근해 일을 챙겼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0년과 2011년 매출은 괜찮았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아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흑자 전환을 꾀하던 2012년엔 SK텔레콤, KT와 경쟁에서 뒤처지며
시장점유율이 점점 떨어졌다.
상황 타개를 위해
LG유플러스는 '실적 두 배 증가 운동'을 벌였다.
2012년 3월 89만명인 가입자를 그해 말까지 200만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가입자는 7월 말까지 95만명에 그쳤다.
부진을 탓하는 화살은 A씨에게 집중됐다.
그를 괴롭히는 건 비단 실적만이 아니었다.
세 회사가 모인 LG유플러스 내에선 파벌이 형성됐다.
가장 큰 세력은 합병의 본류인 LG텔레콤 출신이었다.
A씨 같은 LG파워콤 출신들은 LG텔레콤 출신 때문에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꼈다.
특히 A씨를 발탁한 LG파워콤 전 대표이사는 A씨의 직속 본부장으로 있다가
2012년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LG텔레콤 출신의 새 본부장은 A씨를 배제하고
A씨 밑 팀장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파열음은 점점 커졌다.
A씨는 그 이후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회의를 들어가도 주도를 하지 못했다.
공황장애가 온 거 같다고 했다.
주위 사람에게 "사는 것이 재밌느냐"며 "그동안 회사와 집만 다니고 취미나 다른 일이
20년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내 소문은 빨랐다.
A씨는 과거 친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등을 돌린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내 이메일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막다른 곳에 몰린 A씨는 목숨을 끊었다.
오전에 사장단 업무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회사 측은 "A씨는 영업부문 상무가 아니라 실적 압박은 크지 않았다.
전날 밤 부부가 심하게 다퉜다고 들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는 그렇게 회사에서 잊혀갔다
판결문은...
선고 5일 후 유족에게 도착했다.
거기엔 A씨의 마지막 모습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일과 집밖에 모르던 두 아이의 아빠가
왜 가족을 뒤로하고 뛰어내려야 했는지에 대한 공식 설명이었다.
A씨가 사망한 지 3년하고도 16일이 더 지나서였다<연합뉴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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