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진씨가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벌이고 있다.
8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해고 노동자 김석진(44)씨가 새해 벽두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에 들어갔다. 3년5개월째 계류 중인 해고무효소송의 판결을 빨리 내려달라며 5일부터 매일 1시간 동안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김씨는 "대법원이 복직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1997년 해고된 그는 법원에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냈고,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몇 달 안에 (대법원에서) 판가름나겠지 하고 기다려 온 세월이 무려 3년이나 되었다. 참다 못한 그가 급기야 대법원까지 달려간 것이다.
회사는 지난 해 8월 대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를 사측 변호인으로 추가 선임했다. 이같은 사실을 두고 김씨쪽은 '전관예우'라 주장하고 있다.
김석진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해고에 충격을 받아 4년 가까이 뇌사상태로 있다가 2년 전 세상을 떴다. 현재는 그의 부인이 화장품 외판원을 하면서 60여만원을 벌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해고 당시 코흘리개였던 큰 딸이 이제는 사춘기인 중학교 2학년이 됐다.
그는 몸도 불편하다. 2000년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80일 철야노숙투쟁을 벌였고, 43일간 단식 투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여파로 무릎이 아프고 단식 후유증도 앓고 있다. 2002년에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정문 앞에 집회금지가처분 안내문... 고성능 스피커까지 설치
1980년 현대미포조선에 입사한 그는 1994~1997년 사이 노동조합 대의원과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회사는 1997년 상사 명령 불복종과 명예훼손, 작업시간 통제 항의, 성과급 지연지급 비난 유인물 배포 등의 사유로 그를 쫓아냈다.
그는 공장 정문 앞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해고 뒤 공장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 조합원과 함께 여러차례 집회를 열었다. 회사는 법원에 '집회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지금도 현대미포조선 정문 맞은편에는 철제로 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울산지방법원 집행관 명의로 된 안내문인데 '핸드마이크, 앰프, 방송차량 등의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로 회사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다.
또 정문 옆 주차장 위에는 지금도 고성능 스피커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스피커는 회사에서 설치한 것이다. 한때 공장 정문 앞에서 집회가 잦자 회사에서 집회단체의 확성기보다 더 강도가 높은 스피커를 설치한 것이다.
김석진씨는 "회사는 나를 정문 앞에 오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얼마나 악랄한지 알 수 있는 증거다. 한 노동자의 삶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회사가 이럴수록 더 오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 현대미포조선 정문 옆 주차장 위에 설치되어 있는 고성능 스피커.
대의원 서명 논란 "무분규 전통 깨진다" - "회사 압력으로 서명"
회사가 지난해 8월 노조 대의원 72명 중 66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대법원에 제출한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의원들은 '김석진 해고자가 복직되면 8년 무분규 전통이 깨진다'며 복직에 반대한다는 내용에 서명한 것이다.
대의원 서명에 대해 현대미포조선노조 길이하 위원장은 "사측이 대의원들을 교묘히 이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 교육선전실 진종규 부장은 "대의원들이 서명할 때 집행부는 몰랐다. 대의원 80%가 회사 편이라 보면 된다. 그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서명했다고 하고, 회사가 그 서명지를 받아가서 대법원에 제출한 것"이라 말했다.
노동계도 김석진씨 복직과 대법원의 판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12월 '김석진씨의 복직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는 "대법원은 김씨 사건에 대한 조속한 판결이 한 사람의 노동자를 살리는 길임을 진지하게 인식해야 하고, 설령 대법원 판결이 늦더라도 1·2심 판결에 따라 회사는 즉각 복직시켜야 할 것"이라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 때 김씨 사건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당시 노 의원은 "회사는 김씨에 대한 해고 무효 판결을 지연시키고자 수차례 참고자료를 제출하였고, 회사의 소송 대리인인 변호사가 대법관 출신인만큼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도 대법원은 더욱 신속히 심판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또 노 의원은 "민사소송법은 상고심에서 기록을 받은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하고 있고, 해고무효 소송은 늦어도 20개월이면 끝나는데 이 사건은 무려 32개월째 계속되고 있다"며 질타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답변을 통해 "누가 변호인으로 선임됐든지 재판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노조는 김석진씨와 관련한 내용을 소식지 등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있다. 노조 교육선전실 진종규 부장은 "노조 집행부는 김씨를 안고간다는 입장"이라면서 "지난 9월부터 매월 한 차례 내는 소식지(함성소리)에 김씨 관련 소식을 담고 있는데, 점점 조합원들의 인식도 김씨 쪽으로 돌아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심리중인 사항이 왜 늦어지는지 그 이유는 (재판부 이외에) 알 수가 없다"며 "(재판부가) 결론을 쉽게 낼 수 없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고 말했다.
▲ 현대미포조선 정문 맞은편에 있는 '집회금지가처분' 결정 안내문.
"네 식구 생계 무너지는 걸 바라만 볼 순 없었어요"
▲김석진씨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6일 낮 1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앞을 이틀째 찾았다.
그는 "이미 1, 2심에서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에 대해 승소판결을 받은 상태에서 대법원의 결정만이 남아있다"며 "계속해서 회사에서는 대법원에 참고자료를 넣고 있다는데 이를 대법원은 계속해서 받아주고만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처럼 대법원의 심리가 늦어지면서 네 식구의 가장으로서 생계가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직접 나서게 됐다"며 "대법원의 조속하고 현명한 판결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울산에서 상경한 그는 전날인 5일부터 매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대에 맞춰 2개월 동안 1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우선 오는 25일까지는 점심시간에 맞춰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이후부터는 방법을 달리해서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 유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