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 정원석 기자 | 입력 2014.02.27 16:25 | 수정 2014.02.27 18:01
대법원이 27일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 부회장에게 징역 4년과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지난 11일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게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나면서 경제인 범죄에 대한 엄단 분위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찬물이 끼얹어진 분위기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단순 배임이 아니라 횡령 범죄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법원의 정서가 강하게 표출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회장 사건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사건에도 이같은 판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경제인 범죄는 사면대상이 될 수 없다'는 청와대의 방침이 불변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총수들이 횡령범죄로 사법처리를 받게될 처지에 있는 대기업들은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 적잖은 속앓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최태원 회장 형제, 왜 실형받았나···"회삿돈 개인적으로 사용했는지가 쟁점"
이날 열린 대법원 최종 선고심에서 최 회장 형제에 대한 실형이 확정된 직후 SK그룹의 주요 임원들은 모두 전화기를 꺼둔 채 장시간 회의에 들어갔다.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며 이번 판결로 인한 후폭풍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SK그룹측은 내심 이번 재판에서 파기환송 결정이 날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형제에게 선물투자를 권유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의 1심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며 그를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규정한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공범인 최 회장 형제에게는 감형 사유가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횡령사실을 몰랐다는 최 회장 측 변론이 일부 인용될 여지가 생겼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 재판부가 파기환송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라고 판결하게 되면 2심 재판에서 형량이 낮아져 집행유예 판결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SK측은 최소한 범죄 관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최재원 수석 부회장은 파기환송을 통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것으로 관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주장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았다. SK측은 최 회장 형제가 횡령 사실을 인지한 후 사재를 털어 계열사 자금을 메꿨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회삿돈을 횡령했다는점 만을 고려해 2심 판결을 확정지었다. SK그룹이 재판 후 공식발표한 공식입장에서 "그 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한 이유다.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현 회장과 달리 최태원 회장 형제가 실형을 받은 것은 단순 배임죄와 횡령 범죄에 대한 법원의 시각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부실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계열사 간 지원을 결정한 김승연 회장 사건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긴 했지만 개인적인 착복 의도가 없었는 데 비해, 최 회장 형제가 선물 투자 손실금을 메꾸기 위해 계열사의 돈을 횡령한 것은 그렇지 않다고 봤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횡령 범죄는 회사 자금을 빼돌려 총수 개인의 사익을 추구했다는 점 때문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적은 반면, 단순배임 사건은 경영상 판단이라는 쟁점이 있기 때문에 판결에 따른 논란이 있다"면서 "김승연 회장과 달리 최태원 회장 형제에게 실형 판결이 나온 것은 이런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분식·횡령·탈세 혐의 받는 총수들 '중형' 걱정
재계는 사법부가 이번 판결을 통해 범죄 성격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횡령, 분식회계, 탈세 등 고의성이 뚜렷한 사익추구행위는 엄벌에 처하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출했다는 해석이다. 김승연 회장과 구자원 LIG회장의 집행유예 판결로 인해 경제인 범죄에 대한 엄단 분위기가 한풀 꺾였을 것으로 기대했던 재계의 기대와는 상반된 분위기다.
최태원 회장 형제의 실형이 확정되자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그룹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이재현 CJ 회장은 조세포탈과 탈세, 횡령을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돼 지난 14일 징역4년 벌금 250억원의 1심판결을 받고, 2심 재판을 준비 중이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5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1500억원 규모의 세금을 내지않고 900억원대의 횡령·배임을 범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 형제 재판에서 나타난 판결 기조가 이후 다른 기업인 재판에도 이어질 경우 해당 기업들이 장기 경영공백을 겪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경제 활성화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