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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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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8 17:2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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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서 홍차 팔던 소년, 12억 인도 총리로...(오마이뉴스) |
인도 국민당 총선 압승 거두고,10 년만에 정권교체,
214.05.18 13:37l최종 업데이트 14.05.18 13:37l 오마이뉴스 윤현(yoonys21)
나렌드라 모디(64)가 이끄는 인도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7일(한국시각) 인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도국민당이 전체 의석 543석 중 282석을 공식 확보했다"고 개표 상황을 발표했다. 인도 총선에서 한 정당이 과반을 확보한 것은 지난 1984년 총선에서 국민회의당(INC)이 404석을 차지한 이후 30년 만에 나온 역사적인 압승이다.
모디는 총선 승리를 확정 짓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인도가 승리했다"며 "이제는 좋은 날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반면 44석 확보에 그쳐 정권을 내준 집권 국민회의당의 라훌 간디 부총재는 "패배를 인정한다"며 "새 정권이 국민 단합과 국익을 위해 인도를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인도 총리를 맡아온 만모한 싱은 개표 결과가 나오자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미 싱 총리는 지난 1월 국민회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천민 출신' 총리 모디, 그는 누구인가?
총선 압승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내고 총리직을 예약한 모디는 거리에서 인도식 홍차 차이를 팔던 천민 출신이다. 인도 카스트 신분제 하위계급 '간치(상인)'의 식료품 잡화상 집안에서 태어난 모디는 어린 시절부터 부친을 도와 기차역에서 차이를 팔았고, 청년이 되자 형제들과 함께 버스터미널에서 노점상을 차리기도 했다.
간치 계급의 전통에 따라 18세가 되자 집안에서 맺어준 인연에 따라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헤어졌고, 모디는 2년 넘도록 인도 전역을 떠돌아 다닌 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차이를 팔았다.
10대 시절부터 힌두 국수주의 단체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모디는 민족의용단(RSS)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 단체를 배경으로 탄생한 인도국민당에서 선거 전략을 구상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델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구자라트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쳤다.
1995년, 1998년 인도국민당의 구자라트주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탁월한 선거 전략가로 거듭난 모디는 2001년 구자라트 주총리 선거에 나서 당선되고 3차례나 연임에 성공하며 당의 핵임 인물로 떠올랐다.
모디는 주총리로서 자신의 고향인 구자라트를 눈부신 성장으로 이끌었다. 과감한 친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제너럴 모터스, 포드, 스즈키 등 외국계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모디가 주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구자라트의 총생산은 평균 13.4%의 고속 성장을 했다. 같은 기간 인도 전체 평균의 7.8%를 크게 앞지르는 수준이다.
하지만 모디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2002년 구자라트에서 종교 간 갈등으로 폭동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의 이슬람 교도들이 극우 힌두교도들에게 살해당하는 '고드라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디 주총리는 이를 방치하고, 심지어 동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모디의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그를 '위험한 인물'로 주시하기 시작했고, 2005년 미국 입국을 시도하다가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다'는 미국의 법에 따라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인도 정치 명문가 '네루-간디', 왜 참패했나
'인도판 케네디가(家)'로 불리며 초대 총리를 비롯해 3명의 총리를 배출한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 최고의 정치 명문 '네루-간디' 가문이 이끄는 국민회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참패를 당하며 정권에서 물러나게 됐다.
네루-간디 가문은 인도의 초대 총리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와할랄 네루를 시작으로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의 장남 라지브 간디가 총리를 역임하는 등 1947년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 인도를 이끌며 명망을 쌓았다.
그러나 잇따른 비리 사건과 경기 불황, 높은 물가 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특히 경제가 네루-간디 가문의 발목을 잡았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를 바라보던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 5%를 기록했고, 2013년에는 이마저도 무너졌다.
더구나 정권의 무능한 대응으로 물가는 치솟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자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네루-간디 가문에 대한 실망은 천민 출신에서 주총리직에 오른 모디의 성공신화를 향한 열광으로 이어졌고, 국민회의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농민들마저 일부 표심이 모디로 방향을 바꾸고 말았다. 이번 총선이 역대 최고의 투표율(66.38%)을 기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로써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은 당분간 크게 줄어들게 됐다. 1991년 남편인 라지브 간디가 폭탄테러로 사망한 이후 당 대표를 맡아 가문을 이끌어온 소냐 간디는 고령이고, 그의 아들 라훌 간디는 이번 총선을 이끌었으나 참패를 당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네루-간디 가문이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드물다. 1998년에도 인도국민당이 주도한 국민민주연합(NDA)에 권력을 내줬다가 6년 만에 되찾았던 네루-간디 가문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곧 정권 탈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뉴욕타임스>는 "인도의 도시화, 경제성장 등이 급격한 사회변화를 이끌었고 결국 낡은 투표 패턴도 바꿔놓았다"며 "하지만 모디가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빠르게 실망하고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디가 이끄는 12억 인도, 넘어야할 산은?
모디가 네루-간디 가문의 반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다. 모디는 이번 총선에서 외국계 자본을 유치해 기간시설을 만들고,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민간 경제 위주로 인도를 이끌겠다는 이른바 '모디노믹스'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서는 '고드라 사건'으로 인한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미국도 손을 내밀었다. 전날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인도의 총리 후보가 인도국민당의 모디 당수에게 전화를 걸어 총선 승리를 축하하고, 미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회견에서 "모디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면 민주주의적 가치에 기반한 양국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미국은 인도 총리를 환영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인도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디가 강경한 힌두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세력과 공생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구자라트 주총리로서 거둔 성공이 12억 인구의 인도를 이끄는 총리가 되어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장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구자라트에서 모디는 정치적 맞수는 물론이고 반대세력도 없었다"며 "인도를 이끌고 국가적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모디가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고 전망했다.
모디도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승리 소감에서 "분열의 정치는 끝났다"며 "이제는 연합을 위한 정치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나렌드라 모디, 인도국민당, 네루-간디, 인도 총선 태그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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