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원희룡 제주 도지사는 제주도를 ‘전기차 천국’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2017년까지 전기차 3만대를 보급하겠다. 제주 전역에 전기차 충전소를 만드는 일을 끝내겠다.”
원 지사는 2014년 3월 ‘제주 그린빅뱅 전략 콘퍼런스’에서 단기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났다. ‘전기차의 섬’을 자처한 제주도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 제주 스마트그리드홍보관에 있는 전기자전거 충전소./이병희 기자
◆ 붉은 녹이 뒤덮은 스마트그리드 홍보관 전기차 충전기...전기 자전거 충전기는 없어
5월 4일 ‘제1회 전기차의 날’ 행사에서 연사들은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한 제주도의 노력’을 칭찬하기 바빴다.
김방훈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전기차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세계 전기차 시장의 테스트베드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중앙 정부 지원이 적어 전기차 보급이 안되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박원철 제주도의회 농수축산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제주도가 전기차 산업을 이끌고, 전기차 메카로 거듭나도록 노력하는데, 중앙 정부가 의욕을 꺾는다. 완성차 업체도 방관하고 있다”고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을 찾았다. 원희룡 지사의 비전(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홍보관은 제주의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100m쯤 떨어져 있다. 입구 왼쪽의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 4대를 설치할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설치된 충전기는 3대였다. 3대 중 2대에는 붉은 녹이 끼어 있었다.
홈페이지의 홍보용 사진과 달리 눈을 의심할 정도로 낡았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가림막도 있었지만 바닷바람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바닷물이 실려 날아왔다.
전기차 충전기 옆 자리에 있는 전기 자전거 충전소는 흔적만 남았다. 충전기는 1대도 없었다. 충전기 8대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도 말이다. 바닥엔 충전기를 뽑고 난 뒤 생긴 녹슨 자국이 흉칙했다.
▲ 제주도 신재생에너지 홍보관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의 모습, 두 대는 사용이 중지된 채 방치됐다./ 이병희 기자홍보관의 한 직원은 “안전 문제가 생겨서 (전기 자전거용 충전기는)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안전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스마트그리드는 전기·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전력망을 지능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한국전력은 스마트그리드에 대해 “고품질의 전력서비스를 제공하고 에너지 이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력망이다.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은 전력과 정보통신망의 융합 기술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의 테스트베드를 꿈꾸는 제주도에는 꼭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 관리 상태로는 제주도를 ‘전기차의 테스트 베드’라고 생각하는 관광객들은 없을 것 같았다.
제주도는 전국에서 전기차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공공용 급속충전기 49대, 완속충전기 192대가 보급됐다. 민간사업자도 급속충전기 38대, 완속충전기 92대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부터 제주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 들어간 비용은 14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제주도의 충전기 관리는 유명무실하다는 느낌이었다.
◆ 방치된 녹슨 전기차 충전기들…”폐기하면 또 돈 처바르겠지”
‘신재생에너지 홍보관’에 갔다. 스마트그리드 홍보관에서 1km쯤 떨어져 있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바닷가에서 100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주차장에 마련된 전기차 충전기는 4대 중 2대만 작동했다. 바닷바람을 정면에서 맞으며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대에는 ‘사용 불가’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붉은 녹이 충전기를 뒤덮고 있었다. 충전기 옆면에 ‘EV Charging Stand 전기자동차 충전기’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보였다.
새 충전기도 ‘새 것’은 아니었다. 벌써 녹이 끼기 시작했다. 전기차에 직접 연결하는 충전기 콘센트는 문이 열린 채 보관됐다. 콘센트에선 하얀 소금이 묻어 났다. 충전기 위에 칠한 녹색 페인트 위로 녹이 이끼처럼 번졌다. 방청 처리를 했을 충전기 외피가 소금기를 이기지 못하고 벗겨졌다.
“왼쪽에 있는 (전기차 충전기) 두 대만 사용하시면 됩니다. 오른쪽은 두 대는 사용할 수 없고요.”
신재생에너지 홍보관의 한 직원이 설명했다.
“문제가 있는 두 대는 왜 관리가 안되고 있죠?”
▲ 제주 신재생에너지 홍보관에 설치된 ‘새’ 전기차 충전기에도 녹이 끼었다. 충전기 플러그는 문이 열린채 보관됐다. /이병희 기자주차장을 나오다 주민 박모(48)씨를 만났다.
“전기차 충전기 관리가 잘 되고 있나요?”
“소금기 들어가면 다 녹스는데, 그걸 몰라? 일반 가정집도 그렇게는 안두지. 뭐 할 때나 보여 주려고 쓰고 결국 관리 안 해서 폐기하면 또 돈 처 바르겠지···.”
박씨는 혀를 찼다.
바닷가에서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전기차 충전기 상태는 좋아졌다. 관리가 잘되고있다기 보다는 바닷바람의 영향이 덜한 덕분으로 보였다.
한 주유소의 전기차 충전기에는 비바람을 막을 가림막이 없었다. 비가 오면 고스란히 부식이 진행될까 걱정됐다.
충전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주유소 직원이 목 장갑을 끼면서 다가왔다.
“가림막 없이 관리해도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가림막) 없는데 많은데요. 바다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는 아무 ‘문제없다’며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정말 문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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