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다. 집회 참가자들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 보도가 공갈뉴스가 되지 않으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현대차 용역들로부터 폭행과 위협을 당했지만 조·중·동은 현대차 용역의 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현대차 직원과 용역들은 물대포와 소화기를 동원해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취재도 방해했다. 기자들이 온몸에 소화기 가루를 뒤집어쓰고, 카메라가 물대포에 맞아 망가졌지만 조·중·동 지면에는 ‘현대차의 취재 방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채널A 카메라 기자가 시위대로 추정되는 40대 남자로부터 폭행당했다는 <동아일보> 기사가 유일했다.
가장 큰 문제는 ‘희망버스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고공 농성에 대해 단 한 줄도 기사화하지 않았던 언론이, 1000만 비정규직의 아픔에 대해 다루지 않던 언론이 희망버스 끝나자마자 폭력과 난장 버스로 매도하고 호도한다”라는 비난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